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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호)수화기 저편 - 영혼이라도 팔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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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950회 작성일 200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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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화기저편 >


Question : 영혼이라도 팔고 싶어요.


요즘 부쩍 죽고 싶은 생각만 들어요. 근데 죽는다는게 쉬운게 아니더군요. 24살된 여자에요. 낮엔 직장을 다니고 밤엔 야간대에 다니고 있어요. 몇 년 전만 해도 제가 이렇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만 다니고 있어요. 근데 모두 다 그만두고 싶네요. 마음은 그렇게 하고 싶은데 현실이 자꾸 제 발목을 잡아요.

어렸을 때 친오빠들한테 성폭행을 당했어요. 오빠가 둘 있는데 둘 다 한테요. 사춘기가 되고 커 갈수록 그 기억 때문에 살 수가 없었어요. 칼만 보면 오빠들을 죽이고 나도 죽고 싶단 생각 뿐이었어요. 20살에 집을 나와서 지금껏 연락 한번 하지 않고 지내고 있어요. 다행히 집에서도 절 찾지 않고 있고요. 가끔 집 소식을 듣는데 부모님이 이혼하셨다고 하네요.

집을 나와서 어떻게든 살아야 했어요. 처음엔 친구집에서 지내다가 나중엔 빚을 내서 나왔죠. 3년전만 해도 행복했어요. 비록 빚으로 시작됐지만 제 보금자리였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빚은 불어나고 이젠 감당 할 수가 없네요. 빚 독촉 전화가 오면 더 죽고 싶은 충동을 느껴요.

사실 죽는게 무서워요. 하지만 이제 남은건 그 길 밖에 없는거 같네요. 그럼 그동안 괴로웠던 시간들도 떠오르지 않을테고 밤마다 그날 일들을 꿈꾸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죽기 전에 그동안 잘못들 모두 용서해야 하는데.. 그리고 죽기 전에 한번은 가족들도 보고 싶네요.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다 용서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제일 걱정 되는건 5년 가까이 나만 바라보고 날 많이 아껴준 남자친구. 그 앤 내가 이런 생각 하는것도 모르는데.. 갑자기 없어져 버리면 아무것도 못할텐데.. 선생님.. 저 어쩌면 좋죠? 가진건 달랑 몸 하나인데 몸이라도 팔어서 빚을 갚아야 하나요? 정말 그것만은 죽기 보다 싫은데..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아요. 영혼이라도 팔고 싶어요. 단 하루라도 정말 편안히 살고 싶어요. 걱정 없이... 아무 기억 없이...


Answer : 힘든 시간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이 되도록...


○○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사이버상담실에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 봄비가 내렸습니다. ○○님이 계신 곳에도 그렇게 봄비가 내렸겠지요. 차가운 봄바람에 우리는 옷을 여미게 됩니다. 내 몸을 위해서, 내 자신을 위해서 그렇겠지요.

순수하고 해맑던 소녀 시절. 성폭행을 저지른 사람이 오빠들이었다니. 그 동안 ○○님이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까요. 죽어 버리자고 마음도 먹어보고 또 다시 눈물 닦으며 일어서기를 수없이 반복했을 ○○님. 그러나 ○○님은 오빠들을 향해 실컷 분노를 풀어내지도 못하고 집을 나오셨네요. ○○님 또한 그런 고통 속에 자신을 내버려 둘 수 없었기에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4년 전 그 때, 그래도 ○○님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주 힘든 결정을 내리고 실천하신 것이겠지요.

하지만 독립하기엔 어린 나이였나 봅니다. ○○님 자신을 위해 집을 떠나온 것이었지만 경제적인 독립까지 하기엔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그 빚이 무거운 짐이 되어 ○○님 발목을 붙잡다 보니 모두 다 그만두고 싶고 죽음까지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럴수록 어릴 적 아픈 기억은 더욱 선명하게 되살아나고, 가족 품을 떠나 외롭고 힘들게 보낸 시간에 마음은 더 깊이 아프고, 살고자 하는 의욕마저 무너져 도저히 빚을 감당할 수 없게 느껴질 겁니다. 지금 너무도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어느 누구라도 ○○님의 입장이 된다면 죽고 싶은 마음이 들것 같아요.

그러나 ○○님은 하루라도 정말 편안히 살고 싶어 하시잖아요. 솔직히 죽는 게 무섭다고 고백하는 ○○님인데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에 또 ○○님은 얼마나 괴로울까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서 공부하며 착하고 유순하게 살아온 ○○님인데 이대로 슬프게 죽을 수는 없지요.

○○님! 그동안 ○○님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거에요. 나쁜 길로 들어선 적 없이 이렇게 건강하고 예쁘게 자신을 잘 지켜 왔네요. 자신의 상처를 잘 감싸 안으며 이렇게 씩씩하게 살아 오셨네요. 그렇기에 ○○님은 누구보다 강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그 동안의 기억들이 아프면 아픈 대로, 또 시간이 지나 용서할 수 있으면 용서하는 대로, 자신의 마음이 자유로이 느낄 수 있게 놓아두세요. 모든 기억이 과거일 뿐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부터, 과거란 실재가 아니란 걸 아는 순간부터 ○○님 마음도 자유로워질 테니까요.

다만, 지금 ○○님이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은 직시하시길 바래요. 빚이라는 것이 어찌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데 ○○님을 이렇게 힘들게 하고 있네요. 빚을 갚을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찾는 게 가장 급합니다. 한번에 모두 갚는다는 건 무리겠지만 조금씩 갚아나갈 수는 있을 거에요. 빚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다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면서 돈을 번다면 은행에 의뢰해 보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몸을 팔아서 빚을 갚겠다는 생각은 상상이라도 하지 마세요. 그건 정말 빚지며 사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인 거 ○○님도 아시잖아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서 빚을 처리해 나가세요. 물론 빚을 갚는 문제는 ○○님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만, 어떻게 하면 좀더 효과적으로 빚을 갚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가까운 사람들과 의논하는 것도 좋겠지요. ( .......중략 )

오히려 이 기회를 잘 이용한다면 앞으로 규모있게 살림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힘든 시간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이 되도록 ○○님의 지혜를 발휘해 보세요. 지금까지 그러하셨듯이 ○○님은 씩씩하고 강한 사람이잖아요.

○○님! 오늘 당장 힘을 내시라는 말은 하지 않을께요. 대신 땅으로 꺼질 대로 꺼져본 사람은 누구보다 힘차게 올라올 수 있는 법입니다. 야무지게 마음 추스리고 다시 올라오시길 바랍니다. ○○님이 다시 밝은 모습 되찾으시길 간절히 바라며 좋은 소식 기다릴께요.


- 사이버상담원 '행복지기' 드림 -


한국 생명의전화 자살예방센터 홈페이지(www.savelife.or.kr) 공개상담실에 올라온 상담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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