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한강다리'에서 전화가 왔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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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4.12. 오후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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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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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밤새 '벼랑 끝의 삶' 붙드는 파수꾼들, SOS 생명의 전화와 함께한 11시간…"맘껏 울어요" 그게 어둠 밀어낸 빛이었다]

서울 성북구 한국생명의전화 사무실에 설치된 SOS 생명의전화기. 한강 교량 19곳과 춘천 소양1교에 총 75대가 설치돼 있다. 장소가 그렇다 보니 대부분 '위기 전화'다. 하단 생명의전화 버튼은 전화하고 싶은 당사자가, 상단 119 버튼은 위급한 이를 발견한 신고자가 사용하면 된다./사진=남형도 기자
'띠리리리리리리리링.'

정적을 찢는 전화벨 소리에 심장이 덜컹 울렸다. 모두 숨죽인 새벽 두 시, 한강 교량 어딘가에서 걸려왔을 전화. 생사(生死)의 경계에서 어렵사리 든다는 그 수화기의 무게. 허희라 상담원(51)이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네, 생명의 전화입니다." 모니터엔 발신지가 떴다. 한남대교 하류였다.

컴컴한 밤, 아직은 바람이 차가울 새벽, 휑한 그곳에 홀로 버티고 서 있을 누군가를 상상했다. 허 상담원과 멀찍이 떨어진 채 자세를 고쳐 앉은 뒤 귀를 기울였다. 상담 내용은 비밀이라 들을 수 없었다. 다만 허 상담원은 이렇게 말하며 상대방을 다독였다.

"많이 힘드셨나 봐요. 더 우셔도 돼요. 우시고 싶으면 편히 우셔도 돼요." 무심히 쌓아뒀던 심연의 힘듦마저 뒤흔들어 감싸 안는 말. 칠흑 같은 어둠을 뚫은 빛 같은 그 한 마디에, 나까지 괜스레 울컥해왔다.
밤을 잊은 채 불을 밝힌 한국생명의전화 사무실. 여담이지만 한국생명의전화는 국내 최초의 전화상담기관이기도 하다. 그동안 상담한 건수만 109만여건에 달한다. 이중 SOS생명의 전화는 총 7483건이 걸려왔다./사진=남형도 기자
24시간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곳, '한국생명의전화'에서 처음 맞은 새벽이 그랬다.

지나가다 우연히 본 이도 있겠다. 서울 한강 교량 19개에 설치된 총 75대의 초록빛 전화기. 거기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막막하고 컴컴한 한강을 바라보며 전화기를 들었을 때 언제고 받아줄 이들, 그게 한국생명의전화 상담원들이었다.

이곳 전화 상담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핸드폰으로 거는 전화다. 1588-9191로 걸면 일상 고민, 힘든 자살 문제까지 언제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게 앞서 언급한 한강 교량 전화기로 거는 SOS 생명의전화다.

귀한 생(生)을 저버릴까 싶어 오매불망 전화기 앞을 지키는 이들의 시간은 어떤 걸까. 그게 궁금해 SOS 생명의전화 상담원 곁에 머물러봤다.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함께했다. 상담 내용은 공개할 수 없어 일부 각색하거나 고쳤다.



한강 교량서 걸려오니… 90%가 '위기 전화'


SOS생명의전화 상담실. 전화가 오면, 어느 한강 교량에서 왔는지 위치도 함께 뜬다./사진=남형도 기자
고요한 건물에서 홀로 불을 밝힌 사무실에 들어섰다. 조심스러운 취재를 연결해줘 감사했던, 이예경 사회복지사가 따스하게 맞아줬다. 그는 "평소 기자님 기사를 잘 읽고 있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 이어 허희라 상담원(51, 경력 2년)박인순 상담원(67, 경력 10년)과도 인사를 나눴다. 어쩐지 털어놓고 싶은 봄볕 같은 목소리랄까. 그러니 기나긴 밤이 무탈하게 잘 지나가길, 속으로 바라고 시작했다.

마포대교, 잠실대교, 성수대교, 가양대교, 서강대교. 상담실 벽면엔 낯익은 이름이 나열된 지도가 눈에 띄었다. SOS 생명의전화가 설치된 한강 교량 안내도였다. 교량 하나에 전화기가 네 대(잠실철교만 두 대), 어디서 걸려왔는지 화면에 뜬단다. 지도 아래엔 컴퓨터가 있었고, 그 오른편엔 전화기가 있었다.

하룻밤에 걸려오는 전화는 평균 두 통 남짓(3월 기준). 죽음의 문턱까지 간 이들에게 걸려오는 거라, 한 통 한 통이 절박하고 간절하다. 상대방이 위험하다고 판단 되면, 응급 벨을 눌러 신고를 요청한다. 허 상담원은 "한강 교량서 직접 걸려오는 거라서, 90% 이상이 위기 전화"라고 했다.
상담원이 전화하며 119, 경찰 신고가 필요한 경우엔 안에서 벨을 누른다. 그러면 바깥에서 H1 코드가 뜬다. 신고해달란 신호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면 바깥에 있는 박 상담원이 119와 경찰에 동시에 신고한다. 2인 1조다. 예전엔 홀로 전화를 받고 신고하던 때도 있었다. 감당하기 벅찼었다. 박 상담원은 "전화를 못 끊게 하면서, (상담자가 못 듣게) 동시에 신고하려니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통화하는 이에게 "거기 위치가 OO대교에요?"라고 물으며, 경찰과 119에게 간접적으로 들려줘야 했다.



핏덩어리 토하듯 울 땐, 맘껏 울라고


마음이 힘든 유가족들을 위해 제작된 '오늘의 마음'./일러스트=정옥경, 한국생명의전화 제공
그런 얘길 듣고 나니 고요한 정적이 조마조마했다. 허 상담원과 의자에 앉아 얘기하며 묵직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만약에 전화가 오면 어찌하는지, 그런 얘기들이 이어졌다.

"죽겠다는 분들이 한풀이하듯 말할 것 같죠?" 허 상담원이 그리 물어왔다. 아니란 뜻이었다. 끝을 생각한 이들이라 오히려 구구절절 말하지 않는단다. 위기 전화에 신고하면 출동하는 시간이 5분 정도. 그 안에 전화를 끊지 않게, 위로하고 공감하고 마음을 풀어준단다.

전화를 받으면 엉엉 우는 이들이 많단다. 그럴 땐 "얼마나 힘드셨어요"하며 실컷 울라고 한다. 그러면 핏덩어리를 토해내듯, 오래오래 켜켜이 쌓아뒀던 설움을 터트리며 목놓아 운다. 편견 없이 온전히 들어줄 이 하나 없어 여기까지 온 이들. 세상살이 얼마나 힘들었냐고, 잘못된 삶이 아니라고, 당신도 소중하다고.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그 짧은 시간에 온 마음을 다해 그리 전달한단다.
한강대교에 설치돼 있는 SOS생명의전화./사진=뉴스1
별 얘길 안 해도, 살아줬으면 하는 진심은 전해진다고. 꺽꺽 맘껏 울고 나서 시원해졌는지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하는 이도 있었다. 목소리가 달라진 걸 느낀다고 했다. 그제야 "조심히 들어가세요"라고 한다. 그 순간만 넘기면 괜찮다. 며칠 뒤 "덕분에 위기를 잘 넘겼다"고 전화오기도 한다. 사람을 살린, 굉장히 큰 보람이다.

그렇다고 감정이입을 너무 심하게 해도 안 된다. 같이 푹 빠지면 상대방을 꺼내줄 수 없어서다. 때론 무게감에 따라, 죽고 싶다고 할 때 "아우 왜요"하며 환기를 시키기도 한다. 허 상담원은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에 빛을 넣어주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작은 빛으로도 컴컴한 어둠을 밝힐 수 있으니.



4시간 만에 온 전화, 그는 울고 있었다


전화가 올 때가 됐는데, 허 상담원이 그리 말한 뒤 실제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준비된 듯 순식간에 전화를 받았다./사진=남형도 기자
자정에서 새벽 2~3시 사이에 전화가 많이 온다고 했다. 그런데 4시간 가까이 지나도록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오늘따라 전화가 안 온다." "안 오면 다행인 거다." 그런 대화가 이어졌다. 그리고 20대에게 전화가 많이 온단 대화가 시작될 무렵, 전화벨이 크게 울렸다. 새벽 2시쯤이었다.

발신지는 한남대교. 전화 건 이와의 통화가 시작됐다. 허 상담원이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상대방은 우는 듯했다. 그런 그에게 "무슨 일 있으셨느냐"고, "편히 우셔도 된다"고, "힘들 때 전화 잘하셨다"고 했다. 추워서 이제 들어가겠단 얘기가 이어지는 듯했다. 집이 어디냐, 가깝냐는 물음이 더 이어진 뒤 1차 전화가 끝났다.

허 상담원은 박 상담원과 대화했다. 젊은 여성이고, 술에 취한 것 같다고 했다. 말을 이어가려 했으나 추워서 집에 간다며 끊겠다고 했단다. "전화 받아줘서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고.

그리 얘길 나누고 있는데, 3분 뒤 2차 전화가 또 걸려왔다. 허 상담원이 총알처럼 뛰어가 수화기를 들었다. 얼추 집에 데려다주겠단 통화가 이어졌다. 그런데 무언가 불안한 대화가 들리더니, 그가 "여보세요?"만 반복해서 외쳤다. 대체 무슨 일일까. 심장이 '쿵쿵' 거리며 뛰었다. 그대로 전화가 끊겼다. 긴급상황이었다.

그 사이 박 상담원은 이미 119와 경찰에 신고했다. 그는 "술에 취한 사람은 순간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 위험하다"고 했다. 또 다른 위험 사례는 전화가 걸려온 뒤 아무 말 없이 끊겼다가, 다시 걸려온 경우다. 그럴 땐 바로 신고한다. "죽을까 말까, 망설이다 끊은 거여서"라고 박 상담원이 설명했다.



당신이 걱정되어, 백지장이 돼 기도한 이가 있었다


불안하게 전화가 끊겨 걱정된다던 허 상담원(오른쪽)과 그를 침착하게 안심시키던 박 상담원(왼쪽). 누군가가 진심으로 살아냈으면 좋겠다고, 그 마음이 이랬다./사진=남형도 기자
불안하게 전화가 끊긴 뒤 허 상담원은 얼굴이 백지장이 돼 넋이 나갔다. 그래 보였다. 웃음기가 사라지고, 서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대화했던 상황을 계속 곱씹었다. "더 울지도 않고 무슨 일인지 말도 안 하고 언니 추워요, 그러는 거예요." 그러다 상대방이 불안한 얘길 했고, 대답이 없었고, 119가 오가는 상황 소리만 들리다 전화가 끊겼단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허 상담원은 "119에 전화해 확인해보고 싶다"고 했다.

경험이 더 많은 박 상담원이 침착하게 그를 달랬다. "아마 순찰하다 발견했을 거야.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있으니까 안전해. 애썼어. 고생했어"라며. 그러나 허 상담원은 너무 애매하다며, 마음을 쉬이 달래지 못했다.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 몇 시간 같은 20분이 지났다. 어쩌면 살고 싶어 전화했을, 사연도 얼굴도 잘 모르는 누군가의 생사는 어찌 됐을까. 그 상념이 머릿속에 찰싹 달라붙어 떨칠 수 없었다. 흐르는 1초마다 무거운 공기가 오갔다. 새벽 2시 30분쯤, 박 상담원이 마침내 119에 전화를 했다.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여쭤보려고 전화했습니다. 네네. 감사합니다."

"경찰에 인계됐대." 그 한 마디에 모두 탄성을 질렀다. 허 상담원은 "어우 정말"하며 그제야 웃음을 보였다. 아무 말 없이도 같은 마음이었다. 불안한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았단 것, 누군가 이 밤을 살아냈단 것. 그러니 평범하게 숨 쉬는 것도 사실은 이토록 기쁜 거였다.

그리고 허 상담원의 뒤늦은 고백. "아까 화장실 가서 기도했어요. 아무 일 없게 해달라고요."

목소리로 만난 당신이라도 꼭 살았으면 해서 이토록 걱정한 이가 있다고. 그러니 벼랑 끝에선 누구라도 혼자는 아닐 거라고. 불을 밝힌 파수꾼이 여기 있지 않냐고. 그 작은 온기로나마 버티고 버티어, 부디 살아달라고.



그들도 '유족'이었다


허 상담원이 그림 치료를 하며 그린 그림. 유가족 다섯 명이 그린 그림과 작성한 글을 엮어 '그리는 밤'이란 책도 냈다./사진=남형도 기자
전화 한 통이 무사히 끝난 뒤 맥이 탁 풀렸다. 전화벨이 또 울릴까 두려웠다. 내 말 한마디에 삶이 오간다 생각하니 도망치고 싶어졌다. 밤잠을 못 자면 이틀은 후유증이 남는 일, 혹여나 숨지는 이가 생기면 지키지 못한 생각에 트라우마까지 생기는 일. 이들은 대체 어떻게 그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걸까. 그것도 자원봉사로(교통비 정도만 받는단다) 말이다. 아무리 생명을 구하는 일일지라도.

두 상담원도 '유족'이라고 했다. 어느 날 갑작스레 가족을 잃었다. 숨길 이유는 전혀 없으나, 상처를 드러내긴 조심스러우니 사연은 아끼려 한다. 그저 그리되었다. 허 상담원도 삶을 등지고픈 날들이 있었다. 무척 힘든 시간이었다. 밝은 척, 씩씩한 척 견디는 성격도 우울함을 이기기 어려웠다.

1년은 멍했고, 3년까지 그랬고, 4년 정도 되니 괜찮아졌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삶의 관점이 달라졌다. 다시 바라보게 됐다. 쫓고 있었던 건 대체 뭐였을까, 내려놓게 됐다. 욕심도 집착도.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다 지나가고 평온해졌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렇게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불행한 일만 있는 게 아녔다. 선물처럼 좋은 시간도 찾아왔다. 삶이 늘 그렇듯이.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는 것, 그건 삶의 관점이 전부 달라지는 거라고 했다. 소소한 음식 하나에도 웃을 수 있는 것, 행복은 그리 거창한 게 아니라고 허 상담원과 공감하며 대화를 나눴다. 사진은 파김치를 곁들인 짜장라면./사진=남형도 기자
짜장라면에 파김치를 가족과 나눠 먹는 것, 자녀들과 산책하며 깊이 대화하는 것, 그런 소소한 행복이 귀하다는 걸 깊이 깨닫게 됐다. 하고 싶은 일에 열심히 매달리는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OO야, 오늘 그냥 자. 아무것도 하지마!" 낮잠 자고 일어난 딸은 얼굴이 환해진 채 "엄마~"하고 찾는다. 마음이 자유로워진 거다. "지금은 너무 행복해요." 호탕하게 웃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아 보여 나도 따라 웃었다.

그런 그들이라 한강 교량서 전화 건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 번은 "도박의 끝이 여기"라며 전화 온 아버지가 있었다. 5살 아들이 있다고 했다. 실수하고 힘드시겠지만, 돈을 잃었다고 전부 잃은 건 아니라고, 회복할 수 있을 거라 위로한 뒤 그의 아들 얘길 했다. "아들이 아빠까지 잃으면 어떡하겠어요." 남겨진 이의 아픔을 알기에, 그리 말했던 게다.

얘길 들으며 끄덕이던 아버지는 "주위 사람이 쳐다봐서 창피하다"고 했다. 좋은 거였다.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으니.



살아난 이들이, 또 살리고 있었다


새벽 4시 40분쯤, 이젠 더이상 전화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들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유가족들이 저절로 그리된 건 아녔다. 가족을 잃은 이들은 이런 질문을 제일 많이 던진단다. '대체 왜 그랬을까.' 그 마음을 헤아리고 심리 공부도 하고, 상실한 만큼 충분히 애도하는 과정이 필요하단다. 그런데 감정을 억제하고 또 숨기고 표현하는 것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단다. 때론 주위에서 누군가 떠난 걸 두고, 남겨진 사람 탓을 하기도 한단다.

이를 위해 한국생명의전화에선 '유가족 모임'을 꾸렸다. 아픔을 아는 이들이 서로를 잘 안다. 게다가 유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할 확률은 8~9배까지 높다. 그러니 절실히 필요한 거다.

박 상담원도 아들을 잃고 유가족이 된 뒤 처음엔 바닥을 쳤다. 상담하면서도 '내가 왜 이걸 하나, 누굴 위해 하나'하는 자괴감이 컸단다. 얘기를 반복하고, 엄청 울고, 그리 반복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 뒤 유가족 모임의 구심점이 됐다. 전국을 찾아다니며 유가족을 만나 위로했다. 허 상담원도 박 상담원을 처음 만났을 때 무려 2시간을 엉엉 울며 얘기했단다.

그러니 유가족 모임에 나오라 한다. 박 상담원은 이리 설득했다. "상실과 아픔 하나로만 만나는 거잖아요. 유가족들이 깊은 우울증에 빠져 처음엔 안 나오려 합니다. 일단 나오라고 합니다. 머리를 며칠 안 감아서 떡이 져도 좋고, 밥을 안 먹어 속에서 냄새가 나도 좋고,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도 좋다고요. 머리에 핀을 꽂고 색동저고리를 입고 춤을 춰도 이상한 게 아니라고요. 가족을 잃었는데 그게 대수겠어요. 그럼 용기를 내어서 나옵니다. 꼭 안아줍니다. 엉엉 울지요."

그리 살아난 유가족들은 상담원 교육을 받았다. 우선은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이다. 나아가 삶을 등지려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살아난 이들이 또 사람을 살리는 게다.



살려낸 아들이 '명절'에 옵니다


/사진=한국생명의전화
생명을 살리는 경험은 그 무엇보다 귀하다. 돈 되는 일이 아닐지라도, 밤새는 고단한 일일지라도, 나로 인해 누군가 삶을 다시 이어갈 수 있다는 기쁨은 이런 거다.

엄마를 잃은 형제가 있었다. 동생은 형이 불안하다며 데리고 왔다. 혼자 두기 힘들어 2~3일을 동생 집에서 지내기도 했다. 박 상담원과 상담했고, 지금은 봉사할 만큼 좋아졌다. 신앙생활을 하며 만난 이와 결혼도 했다. 명절 저녁에 얼굴을 보고 싶다고 찾아오기도 한다. 박 상담원은 "아들이고 며느리 같다"며 "부부가 아기를 낳았을 땐 선물을 사주기도 했다"고 했다. 그리 다 극복이 됐단다, 아들을 잃은 슬픔도.

허 상담원이 대화한 이들도 힘들어했다. 어느 날 청년이 전화와선 "하지 말아야 할 걸 했다"고 토로했다. 도박한 거였다. 얼마를 잃었냐 물으니 수백만원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허 상담원이 "이제 안 하면 되죠. 수천만원이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괜찮아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그렇지요? 이제 안 하면 되겠죠?"하고 감사하다며 끊었다.
새벽에 컵라면을 하나씩 먹어야 한다고. 상담원님이 주신 떡을 먹느라 라면을 먹지 못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전화 상담(1588-9191)으로 살린 이도 마찬가지다. 한 번은 상담 전화가 와선, 옥상에 올라갔다고 했다. 정확한 위치는 알려주지 않았다. 박 상담원이 40분 동안 전화하며 "추우니까 계단으로 내려와요"라고 했다. 그러는 동안 경찰이 추적해 온갖 장소를 다니며 찾아냈다.

그는 이 일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때는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런 자괴감이 있었어요. 그래도 소를 잃었더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하는 거지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 겁니다."



아침이 오니 기뻤다


날이 밝으니 이리 좋았다. 화장실에서 바라본 아침 풍경./사진=남형도 기자
새벽 4시에 한 번 더 전화가 왔다. 다행히 위기 전화는 아녔다. 다리를 건너다 부딪혔다는 내용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얼른 이 새벽이 가기만을 고대했다. 짙은 어둠이 물러가면, 전화하는 이들이 자연스레 사라진단다. 보는 눈이 많아져서 그런 거라고.

오랜만에 밤을 지새우니 고단하고 힘들었다. 허기도 몰려왔다. 박 상담원이 준 떡을 먹으며 빈속을 달랬다. 라면도 놓여 있었으나 졸릴까 싶어 먹지 않았다.

허 상담원과 죽음과 삶을 얘기하며 긴 새벽을 버텼다. 서로 나이를 합치면 90년인, 우리가 살아본 뒤 할 수 있었던 얘긴 이랬다. 미친 듯이 힘든 게 계속되진 않고 어느새 지나간다고, 맨날 밝은 날만 있으면 재밌겠냐고, 겨울이 계속되다 봄이 오면 또 얼마나 좋냐고, 죽음밖에 길이 없다는 생각은 시야가 좁아져 그런 거라고,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그 선택권은 내게 있는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허 상담원은 이렇게 말했다. "실수해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아요. 지금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우린 살아 있으니까요." 게다가 그의 말이 더 설득력 있는 이유는 이랬다. "정말 그래요. 제가 해봤거든요."

대화가 길어져 몇 시간 만에 화장실에 갔을 때, 어느새 어둠을 밀어내고 해가 떠 있었다. 차마 몰랐다. 아침이 오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게 이리 좋은 것인지. 그리고 그 뒤로 더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마음이 힘든 유가족들을 위해 제작된 '오늘의 마음'./일러스트=정옥경, 한국생명의전화 제공
에필로그(epilogue).

20대들이 전화를 많이 한다고 했다. 대체로 이런 이들이 많단다. 감정을 표현하는 게 서툴고, 좀 착하고, 뭐랄까 타인은 잘 이해하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대하는. 남을 공격하진 못하면서 스스로 못나서 그런 거라고 자책한단다.

때론 자해까지 한다고 했다. 박 상담원은 전화할 때 비유를 많이 하는데, 그런 이들에겐 이렇게 얘기한다고 했다. 전화 건 이를 '힘듦이'라 하겠다.

"길을 가다가 실수로 상대방 발을 밟았을 때, 뭐라고 하나요?" (상담원님)
"아우, 미안해요. 다친 데 없어요? 이렇게 말해요." (힘듦이)

"그리고 혹여나 다치게 했으면 연고나 밴드를 붙여주겠지요?" (상담원님)
"네, 그럼요. 맞아요." (힘듦이)

"남에겐 고의가 아니라 실수라도 배려하고 존중하고 그렇게 하잖아요. 그런데 왜 스스로에겐 왜 그리 엄격하게 대하고 상처를 주고 다치게 해요. 미안하단 의미로, 능력이 되는 한도 내에서 손목에 가장 비싼 선물을 해주세요. 멋진 팔찌도 채워주고, 명품 시계도 해주고요. 참 애썼다고, 고생 많았다고 해줘요. 내가 못한 게 하나도 없어요. 최선을 다해 견디느라 애썼잖아요."(상담원님)

그리 곱게 말하면, 수화기 너머로 엉엉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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