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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한강다리'에서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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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118회 작성일 202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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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남형도 기자의 기사 스크랩.


[밤새 '벼랑 끝의 삶' 붙드는 파수꾼들, SOS 생명의 전화와 함께한 11시간…"맘껏 울어요" 그게 어둠 밀어낸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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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생명의전화에서 서울의 교량에 설치되어 있는 SOS 생명의전화 에 대한 기사입니다.


- - -  아래 기사 내용 일부부 - - -



'띠리리리리리리리링.'

정적을 찢는 전화벨 소리에 심장이 덜컹 울렸다. 모두 숨죽인 새벽 두 시, 한강 교량 어딘가에서 걸려왔을 전화. 생사(生死)의 경계에서 어렵사리 든다는 그 수화기의 무게. 허희라 상담원(51)이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네, 생명의 전화입니다." 모니터엔 발신지가 떴다. 한남대교 하류였다.

컴컴한 밤, 아직은 바람이 차가울 새벽, 휑한 그곳에 홀로 버티고 서 있을 누군가를 상상했다. 허 상담원과 멀찍이 떨어진 채 자세를 고쳐 앉은 뒤 귀를 기울였다. 상담 내용은 비밀이라 들을 수 없었다. 다만 허 상담원은 이렇게 말하며 상대방을 다독였다.

"많이 힘드셨나 봐요. 더 우셔도 돼요. 우시고 싶으면 편히 우셔도 돼요." 무심히 쌓아뒀던 심연의 힘듦마저 뒤흔들어 감싸 안는 말. 칠흑 같은 어둠을 뚫은 빛 같은 그 한 마디에, 나까지 괜스레 울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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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잊은 채 불을 밝힌 한국생명의전화 사무실. 여담이지만 한국생명의전화는 국내 최초의 전화상담기관이기도 하다. 그동안 상담한 건수만 109만여건에 달한다. 이중 SOS생명의 전화는 총 7483건이 걸려왔다./사진=남형도 기자

24시간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곳, '한국생명의전화'에서 처음 맞은 새벽이 그랬다.

지나가다 우연히 본 이도 있겠다. 서울 한강 교량 19개에 설치된 총 75대의 초록빛 전화기. 거기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막막하고 컴컴한 한강을 바라보며 전화기를 들었을 때 언제고 받아줄 이들, 그게 한국생명의전화 상담원들이었다.

이곳 전화 상담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핸드폰으로 거는 전화다. 1588-9191로 걸면 일상 고민, 힘든 자살 문제까지 언제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게 앞서 언급한 한강 교량 전화기로 거는 SOS 생명의전화다.

귀한 생(生)을 저버릴까 싶어 오매불망 전화기 앞을 지키는 이들의 시간은 어떤 걸까. 그게 궁금해 SOS 생명의전화 상담원 곁에 머물러봤다.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함께했다. 상담 내용은 공개할 수 없어 일부 각색하거나 고쳤다.
 

한강 교량서 걸려오니… 90%가 '위기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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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생명의전화 상담실. 전화가 오면, 어느 한강 교량에서 왔는지 위치도 함께 뜬다./사진=남형도 기자

고요한 건물에서 홀로 불을 밝힌 사무실에 들어섰다. 조심스러운 취재를 연결해줘 감사했던, 이예경 사회복지사가 따스하게 맞아줬다. 그는 "평소 기자님 기사를 잘 읽고 있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 이어 허희라 상담원(51, 경력 2년)과 박인순 상담원(67, 경력 10년)과도 인사를 나눴다. 어쩐지 털어놓고 싶은 봄볕 같은 목소리랄까. 그러니 기나긴 밤이 무탈하게 잘 지나가길, 속으로 바라고 시작했다.

마포대교, 잠실대교, 성수대교, 가양대교, 서강대교. 상담실 벽면엔 낯익은 이름이 나열된 지도가 눈에 띄었다. SOS 생명의전화가 설치된 한강 교량 안내도였다. 교량 하나에 전화기가 네 대(잠실철교만 두 대), 어디서 걸려왔는지 화면에 뜬단다. 지도 아래엔 컴퓨터가 있었고, 그 오른편엔 전화기가 있었다.

하룻밤에 걸려오는 전화는 평균 두 통 남짓(3월 기준). 죽음의 문턱까지 간 이들에게 걸려오는 거라, 한 통 한 통이 절박하고 간절하다. 상대방이 위험하다고 판단 되면, 응급 벨을 눌러 신고를 요청한다. 허 상담원은 "한강 교량서 직접 걸려오는 거라서, 90% 이상이 위기 전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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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원이 전화하며 119, 경찰 신고가 필요한 경우엔 안에서 벨을 누른다. 그러면 바깥에서 H1 코드가 뜬다. 신고해달란 신호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면 바깥에 있는 박 상담원이 119와 경찰에 동시에 신고한다. 2인 1조다. 예전엔 홀로 전화를 받고 신고하던 때도 있었다. 감당하기 벅찼었다. 박 상담원은 "전화를 못 끊게 하면서, (상담자가 못 듣게) 동시에 신고하려니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통화하는 이에게 "거기 위치가 OO대교에요?"라고 물으며, 경찰과 119에게 간접적으로 들려줘야 했다.
 

핏덩어리 토하듯 울 땐, 맘껏 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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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힘든 유가족들을 위해 제작된 '오늘의 마음'./일러스트=정옥경, 한국생명의전화 제공

그런 얘길 듣고 나니 고요한 정적이 조마조마했다. 허 상담원과 의자에 앉아 얘기하며 묵직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만약에 전화가 오면 어찌하는지, 그런 얘기들이 이어졌다.

"죽겠다는 분들이 한풀이하듯 말할 것 같죠?" 허 상담원이 그리 물어왔다. 아니란 뜻이었다. 끝을 생각한 이들이라 오히려 구구절절 말하지 않는단다. 위기 전화에 신고하면 출동하는 시간이 5분 정도. 그 안에 전화를 끊지 않게, 위로하고 공감하고 마음을 풀어준단다.

전화를 받으면 엉엉 우는 이들이 많단다. 그럴 땐 "얼마나 힘드셨어요"하며 실컷 울라고 한다. 그러면 핏덩어리를 토해내듯, 오래오래 켜켜이 쌓아뒀던 설움을 터트리며 목놓아 운다. 편견 없이 온전히 들어줄 이 하나 없어 여기까지 온 이들. 세상살이 얼마나 힘들었냐고, 잘못된 삶이 아니라고, 당신도 소중하다고.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그 짧은 시간에 온 마음을 다해 그리 전달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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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대교에 설치돼 있는 SOS생명의전화./사진=뉴스1

별 얘길 안 해도, 살아줬으면 하는 진심은 전해진다고. 꺽꺽 맘껏 울고 나서 시원해졌는지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하는 이도 있었다. 목소리가 달라진 걸 느낀다고 했다. 그제야 "조심히 들어가세요"라고 한다. 그 순간만 넘기면 괜찮다. 며칠 뒤 "덕분에 위기를 잘 넘겼다"고 전화오기도 한다. 사람을 살린, 굉장히 큰 보람이다.

그렇다고 감정이입을 너무 심하게 해도 안 된다. 같이 푹 빠지면 상대방을 꺼내줄 수 없어서다. 때론 무게감에 따라, 죽고 싶다고 할 때 "아우 왜요"하며 환기를 시키기도 한다. 허 상담원은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에 빛을 넣어주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작은 빛으로도 컴컴한 어둠을 밝힐 수 있으니.
 

4시간 만에 온 전화, 그는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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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올 때가 됐는데, 허 상담원이 그리 말한 뒤 실제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준비된 듯 순식간에 전화를 받았다./사진=남형도 기자

자정에서 새벽 2~3시 사이에 전화가 많이 온다고 했다. 그런데 4시간 가까이 지나도록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오늘따라 전화가 안 온다." "안 오면 다행인 거다." 그런 대화가 이어졌다. 그리고 20대에게 전화가 많이 온단 대화가 시작될 무렵, 전화벨이 크게 울렸다. 새벽 2시쯤이었다.

발신지는 한남대교. 전화 건 이와의 통화가 시작됐다. 허 상담원이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상대방은 우는 듯했다. 그런 그에게 "무슨 일 있으셨느냐"고, "편히 우셔도 된다"고, "힘들 때 전화 잘하셨다"고 했다. 추워서 이제 들어가겠단 얘기가 이어지는 듯했다. 집이 어디냐, 가깝냐는 물음이 더 이어진 뒤 1차 전화가 끝났다.

허 상담원은 박 상담원과 대화했다. 젊은 여성이고, 술에 취한 것 같다고 했다. 말을 이어가려 했으나 추워서 집에 간다며 끊겠다고 했단다. "전화 받아줘서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고.

그리 얘길 나누고 있는데, 3분 뒤 2차 전화가 또 걸려왔다. 허 상담원이 총알처럼 뛰어가 수화기를 들었다. 얼추 집에 데려다주겠단 통화가 이어졌다. 그런데 무언가 불안한 대화가 들리더니, 그가 "여보세요?"만 반복해서 외쳤다. 대체 무슨 일일까. 심장이 '쿵쿵' 거리며 뛰었다. 그대로 전화가 끊겼다. 긴급상황이었다.

그 사이 박 상담원은 이미 119와 경찰에 신고했다. 그는 "술에 취한 사람은 순간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 위험하다"고 했다. 또 다른 위험 사례는 전화가 걸려온 뒤 아무 말 없이 끊겼다가, 다시 걸려온 경우다. 그럴 땐 바로 신고한다. "죽을까 말까, 망설이다 끊은 거여서"라고 박 상담원이 설명했다.
 

당신이 걱정되어, 백지장이 돼 기도한 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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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게 전화가 끊겨 걱정된다던 허 상담원(오른쪽)과 그를 침착하게 안심시키던 박 상담원(왼쪽). 누군가가 진심으로 살아냈으면 좋겠다고, 그 마음이 이랬다./사진=남형도 기자

불안하게 전화가 끊긴 뒤 허 상담원은 얼굴이 백지장이 돼 넋이 나갔다. 그래 보였다. 웃음기가 사라지고, 서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대화했던 상황을 계속 곱씹었다. "더 울지도 않고 무슨 일인지 말도 안 하고 언니 추워요, 그러는 거예요." 그러다 상대방이 불안한 얘길 했고, 대답이 없었고, 119가 오가는 상황 소리만 들리다 전화가 끊겼단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허 상담원은 "119에 전화해 확인해보고 싶다"고 했다.

경험이 더 많은 박 상담원이 침착하게 그를 달랬다. "아마 순찰하다 발견했을 거야.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있으니까 안전해. 애썼어. 고생했어"라며. 그러나 허 상담원은 너무 애매하다며, 마음을 쉬이 달래지 못했다.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 몇 시간 같은 20분이 지났다. 어쩌면 살고 싶어 전화했을, 사연도 얼굴도 잘 모르는 누군가의 생사는 어찌 됐을까. 그 상념이 머릿속에 찰싹 달라붙어 떨칠 수 없었다. 흐르는 1초마다 무거운 공기가 오갔다. 새벽 2시 30분쯤, 박 상담원이 마침내 119에 전화를 했다.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여쭤보려고 전화했습니다. 네네. 감사합니다."

"경찰에 인계됐대." 그 한 마디에 모두 탄성을 질렀다. 허 상담원은 "어우 정말"하며 그제야 웃음을 보였다. 아무 말 없이도 같은 마음이었다. 불안한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았단 것, 누군가 이 밤을 살아냈단 것. 그러니 평범하게 숨 쉬는 것도 사실은 이토록 기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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